1. 줄거리
영화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나라를 잃은 공주가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룹니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외동딸로 태어나 궁궐에서 귀하게 자랍니다. 하지만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면서 그녀의 삶도 급격히 변하게 됩니다. 일제는 덕혜옹주를 일본으로 강제 유학 보내 조선 왕실의 명맥을 끊으려 한다. 그녀는 조국을 떠나기 싫어하지만,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힘겨웠습니다. 그녀를 보호하려 했던 조선 출신 독립운동가 김장한은 그녀가 일본의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돕고자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덕혜옹주를 철저히 감시하며 그녀가 독립운동과 연계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결국, 일본은 그녀를 자국 귀족과 정략결혼시키며 그녀의 의지를 억누릅니다. 조국을 잃지 않으려 했던 덕혜옹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점점 무너져 갑니다.
광복 후에도 그녀는 쉽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 병을 앓으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그녀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그녀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늙고 병든 몸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영화는 덕혜옹주의 일생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나라를 잃은 황녀의 고통을 조명하며, 역사 속에서 잊혀 가던 인물을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어줍니다.
2. 등장인물
덕혜옹주 (손예진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 고종 황제의 외동딸입니다. 나라를 잃은 뒤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야 했으며, 일본의 감시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조국을 그리워하며 독립운동 세력과 연결되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의해 점점 고립됩니다.
김장한 (박해일)
덕혜옹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조선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신의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가 일본의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돕고자 하며,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철저한 감시로 인해 쉽지 않은 길을 걷게 됩니다.
고종 황제 (백윤식)
덕혜옹주의 아버지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후에도 끝까지 조선의 독립을 꿈꾸지만, 결국 일본의 압박 속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어린 딸 덕혜옹주를 지키고자 했으나, 끝내 그녀가 일본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한택수 (윤제문)
일제에 협력하는 조선인으로, 덕혜옹주의 삶에 깊이 개입하는 인물입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 행위를 하며, 덕혜옹주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소 다케유키 (김재욱)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강제로 결혼하게 된 일본 귀족입니다. 덕혜옹주와는 원치 않는 혼인 관계였으며, 그녀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영화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극적인 요소를 더해 덕혜옹주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설명합니다.
3. 고증오류
한일 강제 병합 후 궁궐의 남자 직원은 모두 쫓겨나고 궁녀들만 남았습니다. 따라서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는 날 그 앞에서 우는 내시들은 고증 오류입니다.
영화 내에서 일본어로 옹주를 부를 때도 옹주의 일본식 발음으로 부르지만, 실제로는 일본어 발음을 더해 '도쿠에 히메(德惠姬)'라 불렸습니다. 올케 이방자의 회고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극 중 직접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 김장한의 아버지의 이름이 김황악이라고 언급되었는데 실제 김장한의 아버지 이름은 김정진(金珽鎭)으로 김황진의 동생입니다. 김황진 - 김정진 형제는 신 안동 김씨로 26세 '진(鎭)'자 돌림을 씁니다. 제작진이 이런 점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김장한 아버지의 이름을 김황진의 황을 따서 가상으로 지은 듯합니다.
고종이 어린 장한을 밤늦게 따로 불러 얘기할 때 자신의 딸을 덕혜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고종은 덕혜옹주가 덕혜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고종은 덕혜를 '아기'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만, 극 중 진행 상 아무래도 그냥 "아기야"라고 부르긴 무리였던 듯합니다. 실제로 여러 회고록 등을 보면 어린 시절의 덕혜옹주는 그저 '복녕당 아기씨'로 통칭됩니다. 덕혜옹주가 조선인 노무자들 앞에서 자신을 조선의 옹주 이덕혜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를 고증 오류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나온 몇몇 자료들에 덕혜옹주를 이덕혜로 불렀다고 합니다. 다만 1956년 이혼하고 나서 어머니 귀인 양씨의 성을 따라 양덕혜(梁德惠)로 바꾸고 1962년 국적을 회복하여 귀국하고 나서야 이덕혜(李德惠)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널리 쓰였습니다. 즉, 이덕혜가 틀린 건 아니지만, 차라리 그냥 덕혜라고만 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일제강점기라서 예법을 엄격히 따지지 않아 덕혜옹주가 용보 당의를 입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면서 궁중 예법은 황실의 격에 맞게 한층 상승되었습니다. 왕은 황제가 되었고, 황제의 자식들은 왕이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옹주라 해도 왕의 반열에 있기에 덕혜옹주가 용보 당의를 입는 건 황실 예법에 따른 것입니다.